
(Denver, CO = Won Jeong)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콜로라도 심포니가 덴버 퍼포밍 아츠 콤플렉스의 보처 콘서트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무대에 올렸다.
음악감독 피터 운지안(Peter Oundjian)의 지휘 아래 열린 이번 공연에는 콜로라도 심포니 코러스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바리톤 등 성악가들이 함께했다. 오케스트라와 인간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특유의 장대한 구성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듣다 보면 한 가지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풍성한 소리와 인간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을 완성했을 당시, 정작 베토벤 자신은 세상의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1770년에 태어난 베토벤은 1824년 교향곡 9번이 초연될 당시 53세였다. 오랜 세월 그를 괴롭혀 온 청각 장애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대화 수첩’을 이용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침묵에 가까운 세계 속에서 만들어낸 교향곡 9번의 선율은 의외로 따뜻하고 평온하다. 때로는 은혜롭기까지 하다.
세상의 소리를 잃어가던 음악가가 자신의 마지막 완성 교향곡에서 선택한 것은 절망의 노래가 아니었다. 오히려 ‘환희’였다.
이러한 사실은 절망적인 상황이 반드시 절망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술은, 그리고 인간의 삶은 절망 속에서 오히려 더욱 빛나고 꽃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특히 마지막 4악장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베토벤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음악 속으로 가져왔다. 당시 교향곡에 인간의 목소리와 합창을 본격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실러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 인간애와 형제애 같은 이상을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탐구했던 작가다. 「환희의 송가」 역시 단순히 기쁨을 노래하는 시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서로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 세계에 대한 이상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부터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이는 것을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머물렀던 실러의 언어는 결국 베토벤 생애 후반, 거대한 교향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간의 목소리가 됐다.
청력을 거의 잃고 육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던 베토벤에게 실러가 노래한 환희와 인간애는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약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빛은 교향곡 9번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전달되고 있다.
베토벤이 이 작품을 쓰던 시대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오늘날과 같은 통일 독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며, 프로이센을 비롯한 여러 독일 국가들과 오스트리아는 오랜 나폴레옹 전쟁의 시대를 지나온 뒤였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 유럽은 빈 회의를 통해 기존의 정치 질서를 복원하려 했고, 베토벤이 살았던 빈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에서는 메테르니히 체제 아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강화됐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곧바로 평온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도 예술은 꽃피었다.
그리고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을 탄생시켰다.
이번 콜로라도 심포니의 공연이 열린 9월 11일부터 13일까지의 기간 역시 미국 현대사의 비극인 9·11 테러를 기억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25년 전의 비극을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연대와 형제애를 노래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개인의 삶에서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인간에게 고통과 절망의 순간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반드시 절망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청력을 잃어가던 한 음악가는 환희를 작곡했다.
분열과 전쟁을 경험한 시대에 그는 인간의 형제애를 노래했다.
그러한 시대에도 위대한 예술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이 잉태되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이다.
예술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의 인내와 마음속에서 잉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